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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 선교사묘역 역사를 바로잡아 주세요”

기사승인 2019.08.13  08: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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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봉인 장로 선교사업회, ‘양화진 역사 바로세우기’ 공청회 열어

   
▲ 공청회에서 발제 중인 고 최봉인 장로 손자며느리 최지연 사모

“언더우드, 아펜젤러, 헐버트 선교사 등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안장되어 되어 있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100주년선교기념관 터는 분명 할아버지인 최봉인 장로의 소유입니다.”

지난달 초 양화진선교사 묘역 내 100주년선교기념관 터가 묘지를 돌본 서교동교회의 창립교인이자 제1대 장로로 헌신한 최봉인 장로의 소유라는 주장이 최 장로의 후손들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관련 기사 보기)

최 장로 손자며느리인 최지연 사모(시애틀베다니교회‧샛별한국문화원 원장)는 기자회견에서 국가 외교문서인 ‘외아문 일기’ 등을 근거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내 100주년선교기념관 터가 할아버지인 최봉인 장로의 소유임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지연 사모는 후손들이 원하는 것은 땅을 돌려달라거나 하는 것이 아닌, ‘역사를 바로 잡아 달라는 것’임을 분명히 하며 이를 위해 그동안, 묘역을 관리하는 100주년기념재단과 논의해 온 7년의 과정을 공개해 작은 파문이 일었었다.

이런 가운데 60여년 묘역을 돌보다 세상을 떠난 고 최봉인 장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설된 ‘최봉인 장로 선교사업회’는 12일 서울 연지동 기독교연합회관에서 ‘한국교회 양화진 역사 바로 세우기’ 공청회를 개최했다.

100주년기념재단과 최 장로 후손들을 초청해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진실에 관한 의견들을 들어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100주년기념재단 측의 불참으로 공청회는 사실상 최 장로 후손들의 주장을 듣는 자리가 됐다.

100주년기념재단 측은 선교기념관 터가 최 장로의 소유였다는 것은 유족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이를 사실로 확정할 만한 객관적 증거가 전혀 없기에 최 장로 후손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100주년기념재단 측은 먼저 선교사업회측에 보낸 공문에서 “공청회 개최에 동의한 바 없다”면서 “선교사 묘역은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 명백히 100주년기념재단의 소유이며, 이는 어떠한 이유로도 변경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공청회에 후손 대표로 참석해 발제한 최 장로 손자며느리 최지인 사모는 “우리 후손들은 양화진의 바른 역사를 세우고, 선교관이 이름대로 선교사들을 위해 쓰이길 바라는 마음 뿐”이라면서 100주년기념재단(이하 기념재단) 측의 공문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기념재단의 ‘감검관이 산 땅은 100자에 70자가 가까운 약간 세모난 땅이라 했지만, 관할청장 홍현택이 조사한 바로는 감검관이 산 것은 사실이나 둘레가 불과 수십보 밖에 되지 않아 상반된 이야기’라는 주장에 대해선 “외국인들이 척간하는 자와 관할청에서 척간하는 보의 차이를 서로가 몰랐다. 관할청 나졸들은 국가의 명이라 수천 평이나 수만 평이 되는 것으로 느꼈는지 수십보가 너무 작았다”면서, “그러나 100자에 70자는 약 200평이고, 1보가 182센티이니, 둘레가 50보이면 역시 200평으로 같은 크기”라고 반박했다.

‘“앞이 국유지라서”라는 문장의 귀결이 애매하다’는 주장에 대해선 “누군가의 대지나 전답이 아니라 국유지라 뭐라고 문장을 정리하기 어렵다는 뜻”이라면서 “당시는 카메라나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기에 글로 정리, 정확하게 문장의 귀결이 어렵다는 설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 사모는 “문서마다 감검관이 샀다는 것은 승인한다고 했고, 원문에 매득(買得)이라고 썼다”며 “사들인 것은 사실이라고 문서마다 기록되어 있고, 문서에 내부대신 이재순 직인이 찍혀 있다”고 강조했다.

‘감검관이 최봉인이라고 이름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마포구 합정동 144는 13개의 필지 중 유일한 대지로 그 땅에는 최봉인 장로와 후손들만 살았다. 다른 사람들이 산 기록이 없다”면서 “양화진 묘지 관리는 1950년 6월 24일까지 최봉인 장로 외에 다른 사람이 없었고, 60년 동안 하인, 소작인들과 관리했으며 일제하 선교사들이 모두 쫓겨 간 이후에도 500개가 넘는 묘를 관리했다”고 밝혔다.

‘최봉인 장로가 묘지에 살면서 관리하며 매달 돈을 받았기에 주인이 아닌 묘지기’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감검관 최봉인 장로는 죽을 때까지 60년 동안 그 땅에 살았다. 1984년 백주년이 들어와 후손들이 살고 있는 집을 허물고, 선교관을 지을 때까지 95년 동안 그 땅에 산 사람이 최봉인 장로와 후손 밖에 없다. 다른 감검관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 사모는 “돈이 필요해서도, 땅을 원해서도 아니다. 평생을 묘지를 관리해 온 할아버지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것 뿐”이라며 “하나 원하는 것이 있다면 선교기념관이 오늘의 선교사들과 미래의 선교사들을 연결시키는 연결고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 사모는 100주년기념재단의 무성의함에 섭섭함을 토로하며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코자 노력했는데 이렇게 계속적으로 협력치 않는다면 법적 소송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봉인 장로 선교사업회’는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 한국 선교의 상징인 양화진이 또다시 분쟁에 휘말리는 모습은 결코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는데, 반쪽짜리 공청회가 돼 아쉽다”면서 한국교회가 양화진의 진실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희망했다.

이병왕 기자 wanglee@newsnnet.com

<저작권자 © 뉴스앤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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