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아멘교회 송영춘 목사의 목회 수상(隨想) (15)

 

몇 해 전의 일이다.

공동체의 중요한 자리에 사람을 뽑아야 할 때였다.

전체 회의를 거처 적격자라고 생각되는 사람 몇을 뽑았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받은 감동에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던 일이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게 하겠다’는 감동은 그들의 자격을 의심하는 내게 하나님이 주신 깨달음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게 하겠다!’ 참 좋은 말인 것 같다. 그리고 평등이 무엇인지 잘 가르쳐 주는 말 같다.

평등이란 환경과 조건이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각 각이 같을 수 없음을 인정해 주는 것, 각 각은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이 평등이다.

내가 할머니로부터 자주 들었고 그래서 할머니에게 배웠고, 내 자식에게 가르치고 실천할 때 썼던 말이 있다. ‘어부바’가 바로 그것이다.

많이 걸어 힘든 내게, 걷기 싫어 꾀를 부리는 내게, 몸이 아파 기를 상실한 내게, 걸음이 느린 내게 갈 길을 재촉할 때, 함께 걷는 내게 최고의 애정의 표현이 바로 ‘어부바’였다.

내 할머니의 그 말에,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이내 돌리는 등으로 기다렸다는 듯 업혔었다. 너무 야윈 할머니의 등이었지만 세상에서 제일 넓고 따뜻한, 내게는 둘도 없는 큰 언덕이었다.

내 자식에게 등을 돌려대며, 업히기 좋게 자세를 낮춰주며 ‘너에게는 네 아비 말고도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등이 많았으면 좋겠다. 참 좋겠다’ 생각했었다.

‘어부바’는 기댈 수 있는 언덕이고, 의지 할 수 있는 든든함이다. 그리고 가슴으로 느끼는 사랑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명제가 참이 되려면 ‘이 자리를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생각하면 안 된다. ‘이 자리에 앉은 나를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생각해야 한다.

자리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 역시 ‘자리’가 주는 마력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는 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생각하면 스치는 바람에도 옷 매무새를 고치는 진정함이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어부바’를 배운 민족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서로 의지해야 한다는 겸손을 배웠고, 돌려대는 등의 따뜻함에 익숙한 민족이다.

어려서부터 체온으로 배운 사랑을 내 등을 내줌으로 실천할 줄 아는 민족이다.

평등은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을 실천함으로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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