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한반도 평화 화해 기원 예배'

 

‘오늘은 독일, 내일은 한국’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때 벽면에 적혔던 글귀인데 그로부터 30년, 한 세대가 지났다.

통독을 넘어 사회통합을 이루며 유럽의 중심국가로 도약한 독일사회와 이를 위한 교회의 역할 등 독일의 경험은 여전히 분단시기를 살아가는 우리 민족을 섬겨야 할 한국교회의 선교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전범국가라서지만 한국은 피해국임에도 전후 냉전질서에 의해 동시에 분단되었다.

그로부터 독일은 분단 40년이 되는 1989년 베를린장벽을 허물고 이듬해 민족의 재통일(Wiedervereinigung, 1990. 10.3)을 이룩하였다.

베를린장벽붕괴(Berliner Mauerfall, 1989. 11.9)를 유발한 구동독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이교회의 월요기도회가 통일에 기여한 독일교회의 실제적 역할이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비폭력 평화혁명(Friedliche Revolution)에 의한 독일통일의 기폭제가 된 월요기도회(Montagsgebet)의 저변에는 보다 근원적으로 1945년 종전부터 통일을 이룬 1990년까지 독일민족에게 끊임없이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교회에 대한 비전과 소망을 제시한 교회의 역할이 있었다.

종전 직후 분열의 위기에 직면한 동서 양 교회는 나치 하에서 교회가 철저히 항거하지 못하고 불의에 침묵한 것을 회개하는 ‘슈투트가르트 죄책고백’(Stuttgarter Schuldbekentnis, 1945.10)을 선언함으로 하나의 단일교회 구성을 공고히 한다.

분열과 반목, 불행의 원인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냉전이 시작되는 시기에 자신들의 과오를 참회는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교회의 죄책고백이 독일통일의 영적인, 정신적인 기반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1949년 동독과 서독 정부의 출범이후에도 동서 양 지역의 교회는 하나의 조직을 유지하며 교회의 날(Kirchentag) 대회를 양 지역을 아우르며 개최하였다. 베를린장벽(1961. 8)이 세워져 양교회의 교류가 현실적으로 봉쇄된 1960년대에야 비로소 동서독 교회가 분리되었다.

철의 장막 시기에 양 지역의 교회는 에큐메니칼 교회연합을 통해 하나 됨을 추구하였다. ‘칼을 쳐서 보습으로’(Schwerter zu Pflugscharen, 미 4:3) 라는 기치로 1981년부터 동서 양 교회에서 매년 11월 열흘간 집중적으로 전개된 평화기원운동(Friedensdekade)은 그 대표적인 경우이며 라이프치히 월요기도회도 그 전통의 일환이었다.

‘우리가 (바로) 그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로 시작된 민주화운동이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Wir sind ein Volk)로 구호가 바뀌면서 통일에 대한 요구로 전환되던 때에 동서 냉전체제의 붕괴라는 국제정세의 지각변동과 절묘하게 결합되며 마침내 베를린장벽이 붕괴되었다.

동서독이 분단되었을 당시 긴장완화를 촉구하는 평화운동에서 시작된 평화기원예배가 동독 사회의 민주화와 독일민족의 재통일을 이루는데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이다.

칼스루에벧엘교회는 평화기원예배가 독일통일에 기여한 상징적 역할과 그 영적인 의미에 주목해 베를린장벽붕괴 30년을 맞아 지난 11월 17일(주일), 독일개신교회, 독일감리교회, 이주민교회들을 초청해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기원하는 예배(Internationler ökumenischer Gottesdienst für Frieden und Versöhnung auf der koreanischen Halbinsel anlässlich des 30. Jahrestages des Berliner Mauerfalls)를 드렸다.

그간 독일동아시아선교회(Doam) 파울 쉬나이스목사(Pfr. P. Schneiss), 독일개신교선교연대(EMS) 루츠 드레셔(L. Drescher) 등 주로 독일교회 지한인사들을 설교자로 초청하였는데, 이번 예배에는 바덴주교회 요헨 코르넬리우스-분드슈감독(Landesbischof Jochen Cornelius-Bundschuh)이 설교를 감당하여 유럽현지교회와 이주민교회의 협력이라는 의미를 더하였다.

그는 시편 85편 말씀을 본문으로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거짓 평화가 지배하던 제 3제국 치하에서 질문한 ‘어떻게 평화를 이룰 것인가?’(Wie wird Friede?)라는 제목으로 평화와 화해에 대한 성서적인 전망을 제시하였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시 85:8)

우리는 시편 기자의 고백을 쫓아 입술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도무지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과 편견, 이해관계는 성서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 평화의 메시지보다 늘 앞서 간다. 심지어 그것에 역행한다. 인애와 진리가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도록 우리는 평화의 담지자, 화해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것은 때로 평화를 위한 투쟁의 모습을 지니기까지 한다.

설교 후 독일, 한국, 네덜란드, 루마니아,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에리트레아 사역자들이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이 처한 상황에서 평화를 구하는 중보기도(Fürbitten)를 드렸다.

평화기원기도는 1970년대 네덜란드에서 처음 제안되어 1980년대 동서독교회가 그 정신을 이어받아 평화운동을 전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덴 헤르토그목사(Pfr. den Hertog)는 참석자들이 살아가는 대륙 유럽이 2차 대전 후 오랫동안 큰 전쟁이 없었지만 여전히 평화가 부재한 현실을 애통해하며 교회가 평화의 도구로 쓰임 받아 세상에 소망을 전하는 빛과 소금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하이델베르크 중국교회의 사역자 후이진 첸(Huey-June Chen)은 독일에 선물로 주어졌던 민족의 통일이라는 하나님의 역사가 한반도에도 임하기를 간구하며 중국과 홍콩, 대만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였다.

중국교회의 특송 ‘참 아름다워라’와 ‘오 신실하신 주’ 찬양을 통해 유럽교회가 아닌 미국교회의 선교를 통해 기독교를 수용한 아시아교회의 신학과 영성의 칼라가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베트남교회 사역자의 베트남 사회 내부에 여전히 존재하는 남북 지역 간의 편견과 질시, 심지어 해외에 이주한 디아스포라교회에서도 이를 극복하는 것이 공동체의 주요과제라는 토로를 접하며 분단 70년을 넘어선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해 염려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예전에 전쟁까지도 불사하던 중국, 베트남(교회)과는 이렇게 거리낌 없이 어울리면서, 막상 남북의 동족 간에는 여전히 불신과 몰이해, 미움의 장벽(Mauer)이 서 있는 현실이 느껴져 심히 안타가운 마음과 함께 더욱 기도해야 됨을 깨닫게 되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한독 월요기도회(Deutsch-koreanisches Montagsgebet) 모임을 수년간 함께해온 칼스루에 크리스투스교회 수잔네 랍쉬목사(Pfr.in S. Labsch)는 인사말(Grußwort)에서 베를린장벽으로 동서독이 막혀 있을 때 자신도 이산가족의 고통을 겪었다고 하며 독일에 임한 장벽붕괴의 경험이 한반도에도 일어나기를 기원하다고 하였다.

모든 순서 후 성도들이 정성껏 준비한 식사 자리에서 코르넬리우스-분드슈감독에게 칼스루에 출신의 화가 한스 토마(Hans Thoma, 1839-1924)의 작품 ‘성경을 읽고 있는 화가의 어머니와 여동생’(Mutter und Schwester des Künstlers, in der Bibel lesend, 1866)을 담은 그림엽서를 선물하였다.

그가 관할하는 독일 서남부 바덴지역에 19세기 독일 경건주의의 신실한 토양에서 이룩한 경건(Frömigkeit)이 회복되기를 기도한다는 말과 함께.

예배 임사자들(Mitwirkenden)을 위해 자개로 장식된 기념품을 보내주신 의정부중앙교회 이광석감독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 10. 칼스루에벧엘교회 예배당(Thomaskir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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